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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22.05.16
Life Lovers : 조예린 작가
나만의 속도, 나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Keep Going


 

 

조예린 작가는 오늘도 퇴근하고 황학동에 있는 작은 작업실로 향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좁은 골목들을 지나 작업실에 도착하면 벽면에는 그녀가 손수 짠 패턴들이 걸려 있고, 실, 가위 등 가지런히 정리된 작업대와 한쪽 귀퉁이에 놓여 있는 손 떼 묻은 베틀이 보인다. 조예린 작가는 오롯이 그녀만의 시간으로 가득 채워진 이곳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자유로움을 찾는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을 믿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자유’와 ‘방랑’을 찾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조예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섬유작가 조예린이라고 합니다. 자유로움과 방랑을 주제로 원초적인 감성을 지닌 에스닉 문화권의 텍스타일, 색채, 기하학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시각적 촉각을 강조하는 섬유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섬유작가라는 타이틀이 있어요, 어떻게 섬유작가가 되셨나요?


처음부터 섬유 작가였던 것은 아니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였어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섬유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섬유, 더 정확하게는 실의 리듬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짜여진 실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면, 올록볼록한 볼륨감, 다양하게 표현되는 색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훌쩍 떠난 인도 여행에서 에스닉 문화를 만나게 되었어요. 거기서 얻었던 여러 영감을 어떻게 하면 표현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제가 아무래도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보니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패턴 디자인을 원단에 인쇄해보기도 하고 모듈 스툴, 사이드 테이블, 스탠드 조명, 라운지 체어, 행잉 체어 같은 가구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실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베틀로 직접 짠 직조패턴으로 만든 가방까지 섬유 디자인을 접목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한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섬유 작가라고 불러 주시더라고요. 지금은 그 타이틀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더 말하고 다녀요, 좋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웃음)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묘한 이국적인 감성이 느껴졌는데, 아까 잠깐 말씀하신 인도 여행에서 만난 에스닉 문화의 영향인가요?


네. 제가 인도로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마음을 딱 정했을 때였어요. 회사생활을 하면서 서로 뒤처지지 않으려고 경쟁하는 분위기에 스스로를 억압하고,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지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저 자신을 드러내는 게 힘들고 부담스럽거든요. 누군가에게 실수할까 봐, 책 잡힐까 봐 계속 긴장하고 불안했어요. 그래서 차라리 ‘나’라는 사람을 없애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계속 반복되니까 지쳐서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조차 없던 상태였어요. 겉으로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병들어가는 게 느껴지는 거에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인도행 티켓을 샀어요. 

 

 

오, 인도행 비행기요? 흥미롭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여행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인도 여행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어요. 환경도 상당히 열악했고, 물도 안 맞아서 물갈이도 심하게 하고.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도 그저 좋았어요, 그곳에서 저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보고, 듣고, 먹고…느껴지는 감각들이 모두 오로지 저만을 향한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것도, 내 것을 하자고 마음을 먹은 것도, 비록 고생하긴 했지만, 인도로 여행을 간 것도 다 저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요. 거기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낀 거죠. 제 몸과 마음이 안정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힘들었는데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니, 작가님이 인도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아까도 살짝 말씀드렸지만,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에스닉 문화가 저에게 깊이 마음에 다가왔어요.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사회를 좇아만 가느라 지쳐 도망치듯 떠나온 제가 어떻게 보면 그 사회의 정반대에 서 있는 문화를 만나게 된 거에요. 제가 느낀 에스닉 문화는 느리지만 소박하고 원초적인 감성을 지녔어요. 그들만의 속도, 방식, 그리고 그것들은 주변 환경들과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어우러지죠. 자유롭고 독특한 개성들을 서로 존중하고 또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습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낀 걸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저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의견을 주장하거나 그런 걸 참 못하는데 사실 제 내면에는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든요. 그런 표현 욕구를 말로 하기보다 저만의 색깔이나 이야기를 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이 느낀 에스닉 문화에서 ‘느림의 미학’,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지네요. 그리고 본연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인상 깊어요. 작가님의 작품에도 그런 가치들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될까요?


네, 제 작품도 그런 가치에서 출발합니다. 제 작품은 베틀로 원단을 짜고, 그 원단을 다시 손으로 기워 가며 형태를 잡아가요. 패턴을 짤 때도 딱 정해서 하지 않아요. 켜켜이 쌓인 실의 질감과 볼륨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들만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주거든요. 저는 그 패턴이 저에게 보여주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에요. 

형태도 그래요. 예를 들어 가방이라면 담아서 들 수 있으면 되거든요. 그걸 생각하면서 원단을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형태가 잡히거든요.  

기능은 잃지 않고 원단과 질감, 패턴과 색감 본연 그대로를 내보일 수 있으면서도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최접점을 찾아보는 거죠. 전부 수공예다 보니 꽤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작업이긴 합니다. 그래도 내가 영감을 받았던 것들을 표현하는 거니까 즐겁고 행복해요.

 

 


 

 

사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행복일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작가님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하하, 맞아요. 작품활동을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힘들 때가 있긴 해요. 사실 저는 공예 작가 출신도 아니고, 돌고 돌아서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주변에 멋진 작가님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알게 모르게 비교하게 되는 거에요. 나는 언제 저만큼 하지, 뒤처진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할 때도 있죠.

 

그런데 저는 불안한 것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봐요. 그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 균형을 위해 제 마음가짐을 다독여요. 다시 제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떠올리는 거에요.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법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저를 믿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해보자’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킵 고잉, 나만의 속도로 킵 고잉. 

 

 

자신을 믿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작가님의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네요. 그리고 인도 여행에서의 경험이 작가님이 원래 추구하던 삶의 가치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던 것 같고요.


네. 저는 ‘자유’와 ‘방랑’을 꿈꿔왔어요. 하지만 제가 느끼는 것들을 온전히 저의 느낌으로 표현하기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죠. 그래서 작품활동을 하기 전에는 막연히 떠나고 싶다, 도피처를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착했던 곳이 인도였던 거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요.

퇴근하고 다시 작업실로 출근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너무 피곤하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이 작업실에 도착하면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면서 편안해져요. 이곳에서만큼은 그 어느 것의 방해 없이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있는 이곳이 ‘인도’인 셈이죠. 최선을 다해 저 자신을 표현하면서 자유로움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결국, 상황에 대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덴티스테의 공식 질문이에요. 작가님은 사랑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마찬가지로 제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유로울 수 있는 지점, 삶의 방식 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에스닉 문화에서 경험한 이국적인 정서, 그리고 색과 실, 섬유를 기반으로 작품활동에서 스스로 자유를 찾고 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과 가치관에 따라 자유를 경험하는 방식과 그 순간이 다 다르잖아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가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상대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하고요!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늘 관계 속에서의 중요한 미션인 것 같아요.

 

 

 

글 덴티스테 에디터 사진 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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